반독점 심사 통과와 연 10억 달러 비용 절감 입증 과제
[한국M&A경제] 마벨 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가 광통신 부품 제조사 루멘텀(Lumentum)을 기업가치 1,150억 달러(약 154조 4,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현금 없이 주식만 맞바꾸는 거래로, 루멘텀 주주는 1주당 마벨 주식 4.5주를 받는다. 거래가 끝나면 통합 법인 지분은 마벨 주주가 약 67%, 루멘텀 주주가 약 33%를 갖는다.
마벨의 직전 최대 인수는 2021년 약 100억 달러에 사들인 인파이(Inphi)였다. 이번 거래는 그보다 10배 넘게 크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맞춤형 칩과 네트워크 칩에서 앞서 있는 브로드컴(Broadcom)을 따라잡으려는 승부수로 풀이된다.
시장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발표 당일 마벨 주가는 12.72% 떨어진 171.41달러, 루멘텀은 18.59% 떨어진 684.40달러에 마감했다.
1,150억 달러는 루멘텀 매출의 몇 배인가
마벨이 제시한 루멘텀 주당 가치는 약 1,132달러다. 인수설이 돌기 전 마지막 거래일인 10월 28일 종가에 약 23.9%의 프리미엄을 얹은 값이다. 1,150억 달러는 부채를 포함한 기업가치이고, 지분가치 기준으로는 약 1,025억 4,000만 달러다.
루멘텀의 실적과 나란히 놓으면 값의 무게가 드러난다. 루멘텀은 6월 끝난 2026 회계연도에 매출 약 30억 1,000만 달러를 올렸다. 4분기 매출은 10억 1,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09.3% 늘었고, 비일반회계기준(non-GAAP) 영업이익률은 36.6%였다. 기업가치를 연간 매출로 나누면 약 38배다. 루멘텀이 제시한 2027 회계연도 2분기 매출 전망치 15억 8,000만~16억 3,000만 달러의 중간값을 연간으로 환산해도 약 18배에 이른다.
마벨이 높은 배수를 감수한 근거는 성장 속도다. 루멘텀 매출은 1년 새 두 배가 됐고, 분기 매출 전망치는 직전 분기보다 다시 30% 안팎 높다. 마벨은 거래 종결 후 1년 안에 비일반회계기준 주당순이익(EPS)이 늘어나고,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EPS 증가 폭과 비용 절감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레이저부터 광스위치까지, 브로드컴처럼 ‘한 지붕’ 아래 묶는다
이번 인수의 핵심은 수직계열화다. 마벨은 데이터센터 안의 전기∙광 연결용 칩, 스위칭 칩, 고객 맞춤형 칩을 설계한다. 루멘텀은 빛을 만드는 고성능 레이저와 광 트랜시버, 화합물 반도체(InP) 생산 설비를 갖고 있다. 거울로 빛의 경로를 직접 바꿔 전기 신호 변환 없이 데이터를 넘기는 광회로스위치(OCS)도 만든다.
마벨 맷 머피 회장은 “AI 인프라는 광 연결 중심으로 근본적인 구조 전환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GPU 수만 개를 잇는 대형 클러스터에서는 연결 거리와 전력 소모가 성능을 좌우하고, 그만큼 구리선 대신 광 연결이 늘어난다는 판단이다. 루멘텀 마이클 헐스턴 대표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광학과 전자가 충돌하기 시작했다고 여러 번 말해 왔다”고 썼다.
경쟁 구도에서 보면 브로드컴과의 차이를 메우려는 포석이다. 브로드컴은 맞춤형 가속기부터 스위치, 광 연결까지 AI 데이터센터 하드웨어를 한 회사에서 폭넓게 공급한다. 마벨은 2월 광 연결 반도체 기업 셀레스티얼 AI(Celestial AI)를 35억 달러에 사들였고, 이번에 레이저와 광부품 제조 능력까지 더한다. 양사는 통합 법인이 겨냥하는 시장 규모를 5,500억 달러로 제시했다.
규모 격차도 함께 봐야 한다. 마벨의 2026 회계연도 매출은 82억 달러다. 루멘텀 매출을 더해도 브로드컴의 AI 반도체 사업 한 분기 매출과 비슷하거나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브로드컴이 공동 패키징 광학(CPO) 스위치를 양산 단계로 끌어올린 상황에서, 마벨과 루멘텀의 결합이 실제 제품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통합 이후 출시될 제품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주가 급락이 보여 준 세 가지 의문
첫째는 값이다. 전액 주식교환이어서 마벨 주가가 떨어지면 거래 가치도 함께 줄어든다. 루멘텀 1주의 교환가치를 2일 마벨 종가로 다시 계산하면 약 771달러다. 발표 당시 제시한 1,132달러보다 30% 이상 낮다. IG그룹 악셀 루돌프 수석 기술적 분석가는 “마벨이 너무 많은 값을 치르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떠안는 것은 아닌지 투자자들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둘째는 거래 성사 가능성이다. 2일 루멘텀 종가 684.40달러는 같은 날 기준 교환가치 771달러보다 약 11% 낮다. 이 차이는 주식 투자자들이 거래가 끝까지 성사되지 않을 위험을 그만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합병계약서도 이 위험을 수치로 담았다. 루멘텀이 계약을 깨면 마벨에 29억 달러를, 마벨이 깨면 루멘텀에 58억 달러를 내야 한다. 규제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면 마벨이 32억 달러를 따로 물어야 한다.
셋째는 고객과 경쟁사의 관계다. 루멘텀은 미국 코히어런트(Coherent), 중국 중지쉬촹(Zhongji Innolight)과 광 트랜시버 시장에서 경쟁한다. 엔비디아(Nvidia)는 올해 마벨과 루멘텀에 각각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이번 결합은 엔비디아 대신 자체 칩을 쓰려는 빅테크 고객의 선택지를 넓히는 성격도 띤다. 루멘텀 부품을 사 온 다른 칩 설계사들이 마벨 계열사가 된 공급사를 계속 쓸지도 지켜봐야 한다.
종결 시한은 2028년, 그 사이 남은 관문
양사는 거래 종결 시점을 2028년 상반기로 잡았다. 양사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하고, 미국 「하트-스콧-로디노 반독점개선법」(이하 HSR법)에 따른 신고는 계약일로부터 15영업일 안에 내야 한다. 그 밖에 어떤 국가의 반독점∙외국인투자 심사를 거쳐야 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별도 문서에 담겼다.
계약서상 거래 시한은 2027년 11월 1일이다. 규제 승인이 나오지 않으면 2028년 8월 1일까지 세 차례 자동 연장된다. 계약서는 거래 전체에 중대한 악영향을 주는 시정조치는 마벨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정해 두었다. 심사 과정에서 사업 매각 같은 조건이 붙으면 계약을 다시 따져 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두 회사는 따로 운영된다. 통합의 성과를 처음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루멘텀의 분기 매출이 15억 달러대 전망치를 실제로 달성하는지, 그리고 마벨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10억 달러 비용 절감의 시점과 내역을 언제 내놓는지다. 마벨 주가가 지금 수준에 머문다면 루멘텀 주주가 받는 실제 가치는 발표 때보다 30% 넘게 낮은 상태로 심사 기간을 버텨야 한다.
[한국M&A경제=최은지 기자] choi@kmnanews.com

